스테이블코인, 국경 간 결제의 새로운 표준이 되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이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단순한 거래 보조 수단을 넘어 국경 간 결제의 핵심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가치에 연동된 테더(USDT)와 서클의 USDC가 대표적이다. 특히 과거 비트코인이 차지하던 국제 송금 수요를 빠르게 잠식하며, 글로벌 금융 질서에 변화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3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한 스테이블코인 시장
IMF의 ‘스테이블코인의 이해(Understanding Stablecoins)’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2024년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2025년 9월 기준 약 30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25조원 규모까지 확대됐다. 이는 전체 암호자산 시장 비중으로 보면 약 7%에 그치지만, 실생활 기반의 활용도만 놓고 보면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국제 송금이나 해외 결제, 글로벌 웹3 서비스 이용 등 현실적 활용 측면에서 스테이블코인의 존재감은 이미 비트코인·이더리움을 넘어섰다.
비트코인을 압도한 실제 송금 규모
보고서는 특히 지난해 기준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국경 간 자금 이동이 약 1조5000억 달러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변동성 높은 암호자산을 통한 송금액보다 훨씬 큰 규모다.
IMF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가상자산 거래의 ‘중간 매개체’를 넘어, 법정화폐와 암호자산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글로벌 결제수단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흥국에서 ‘통화 대체’ 현상 가속화
흥미로운 점은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이 신흥국 중심으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중동·남미 국가들에서는 물가 불안과 통화가치 하락에 대비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통화 대체(Currency Substitution)’ 현상이다.
이러한 흐름은 해외 송금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 소외 계층에게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해당 국가들의 통화정책 무력화 및 자본 유출 리스크를 유발할 가능성도 크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시장 점유율 90%… USDT·USDC의 절대적 영향력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대부분은 **테더(USDT)**와 서클의 USDC가 장악하고 있다. 이 두 종목만으로 전체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IMF는 두 발행사가 보유한 미국 단기 국채 규모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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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더: 준비금의 약 **75%**를 미국 국채로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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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클: 준비금의 40% 이상을 국채로 보유
전체 스테이블코인 발행량을 기준으로 보면, 이들이 보유한 미국 단기 국채 규모는 일부 선진국 중앙은행과 비슷한 수준에 근접한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지니어스 법(GENIUS Act)’이 만든 새로운 흐름
2024년 미국에서 시행된 ‘GENIUS Act’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 법은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기업이 준비금을 반드시 현금 또는 단기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보유하도록 의무화했다.
그 결과, 스테이블코인의 성장 → 미국 국채 수요 증가라는 연결고리가 더욱 견고해졌다는 평가다. 미국 입장에서는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조이기도 하다.
국가별 규제 차이로 인한 시장 ‘파편화’
다만 스테이블코인 규제 환경은 국가별로 크게 다르며, 이는 국제 시장의 일관성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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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미카(MiCA)를 통해 가장 강력한 규율 체계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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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중심의 산업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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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별도 프레임워크 운영 중
IMF는 이러한 규제 격차가 일종의 ‘규제 차익(Regulatory Arbitrage)’을 만들어 시장을 분절시키고, 발행사들이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이동할 경우 글로벌 금융 안정성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IMF의 제언: 규제만으로는 부족하다
IMF는 보고서 마지막에서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모든 리스크가 자동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각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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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거시경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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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금융 제도
를 구축해 자국의 통화 주권을 지키는 동시에, 국제 공조를 통해 규제 파편화를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은 이미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으며, 문제는 이를 어떻게 국제적으로 조율하며 안전하게 관리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핵심 과제가 된 셈이다.
